산악인 고미영(41) 씨가 히말라야 낭가파르밧 정상에 오른 뒤 하산 도중 추락해 사망했습니다.
'세계 여성 최초'이자 '남녀 통틀어 세계 최단기간' 14좌 등반에 도전하던 고미영씨의 사고는 특히 대기록 달성에 단 3개만을 남겨두고 날아든 비보여서 주위를 더욱 안타깝게 하고 있습니다.
고씨는 현지시각 11일 오후 7시30분(한국시각 오후 10시30분) 세계에서 9번째로 높은 낭가파르밧(8,126m) 정상에 오른 뒤 하산하며 해발 6천200m 지점의 캠프2를 100m 앞두고 고정로프가 없는 구간을 통과하다가 실족, 협곡으로 추락해 생을 마감했습니다.
히말라야, 카라코람산맥에 걸친 8천미터 이상 고봉을 가리키는 14좌 도전은 1986년 이탈리아의 라인홀트 매스너가 등반에 첫 성공한 이래 세계적으로 성공한 산악인이 14명에 불과할 정도로 고미영 대장의 도전은 결코 쉽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 대장은 2006년 '초오유(8,201m)'를 시작으로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8,848m)', 죽음을 부르는 산 'K2(8,611m)', 무산소로 도전했던 '마나슬루(8,163m)' 등 3년여 만에 무려 11개의 정상을 밟으며 세계 산악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고 대장은 안정적인 공무원생활을 떠나 산악인의 길로 들어선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였습니다. 옛 농림부 소속이던 어느 날 경기도 가평 명지산으로 야유회를 갔던 것이 계기가 되어 한동안 전국의 명산을 혼자 돌아다니며 비박했을 정도로 산의 매력에 흠뻑 빠졌고, 결국 10년 이상 다니던 직장에 사표를 내고는 1997년 프랑스로 등반유학을 떠났습니다. 이후 11년 동안 스포츠 클라이밍 국가대표를 지내며 아시아 최강자로 군림한 그는 지난해 12월 가졌던 인터뷰에서 산악인이 된 과정을 자세히 밝힌 적이 있습니다.
“대회 나가니까 친하게 지내던 외국선수들은 이미 은퇴하고 없더라고요. 클라이밍이 워낙 근력을 쓰는 운동이라 나이 마흔 넘어서까지 선수생활을 지속한다면 현상유지마저 힘들지 않겠나하는 생각이 있었죠. 그러던 중 등산학교 강사들끼리 경험삼아 고산등반을 처음 가봤는데 그렇게 재밌을 수가 없었어요. 출발하기 전에는 스스로도 걱정을 많이 했는데 같이 간 사람들이 모두 놀랄 정도로 적응을 잘했어요. 돌아와서 소속사로부터 고산등반 권유를 받고 ‘그래 한 번 해보자. 해보긴 해보되, 목표 없이 무작정 하느니 아직까지 14좌 완등한 여성이 세계에서 없으니 그걸 목표로 하자’며 시작했습니다.”
고 대장은 산악인들이 가장 꺼려한다는 파키스탄 드리피카 등반에서 허리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기도 했고, K2 등반 때는 동료들을 눈앞에서 떠나보내는 등 그동안 숱한 고비를 맞아왔습니다. 그럴 때마다 특유의 긍정적 마인드로 오뚝이처럼 일어났고, 14좌뿐 아니라 7대륙 최고봉에까지 이름을 새기며 ‘세기의 철녀’로 부상 중이었습니다. 극한의 추위와 눈보라를 이겨낸 강철체력의 비결을 묻자 그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며 수줍게 웃음을 지어보이기도 했습니다.
“전북 부안에서 살던 어린 시절, 학교에 가려면 40분 이상 걸어야 했어요. 그렇게 9년을 다녔던 게 결국 기초체력을 다진 것 같아요. 어렸을 때 하는 운동이 중요하잖아요. 또 아버지가 아직 부안에 계세요. 올해 여든 둘이신데 술도 잘 드시고 굉장히 건강하세요. 건강한 체질을 물려주신 부모님에 대한 고마움을 많이 느껴요. 지금껏 고산병 때문에 고생한 적이 거의 없거든요. 클라이밍 할 때는 그저 내가 노력해서 잘하는 거라 자만했는데, 고산등반하면서 노력한다고 고소적응 잘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된 후부터는 부모님의 고마움을 절실히 깨달았죠.”
그와의 만남을 이제와 다시 꺼내보는 건 전국적인 이슈가 되어서가 아닙니다. 각 언론 및 포털사이트에 달린 댓글 중 '자만, 잘난체, 무모함'이 주를 이루는 의견에 선뜻 수긍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공무원 시절의 에피소드부터 시작해 자신의 이야기를 쉴 새 없이 풀어놓으며 예정된 인터뷰 시간을 빠듯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인터뷰에 응하는 모습은 일반적인 그것처럼 미리 준비한 공과를 늘어놓는 게 아니라, 옆집 누나의 수다에 가까웠습니다. '아.. 저 부분까지는 얘기 안해도 되는데' 싶을 정도로 일체의 꾸밈 없이 자신의 모든 것을 드러냈고, 기회 닿는대로 유머를 구사하며 동석한 사진기자마저 웃게 만들었습니다.
기사화되지 않은 부분까지 포함해 일련의 대화과정을 종합해보면 그가 굉장히 낙천적인 사람이라는 것, 그리고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것에 흡족해하고 즐거워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경쟁자를 의식했다거나 자신의 능력을 과신해서가 아니라, 스스로의 도전 자체에 의미를 두고 있었습니다.
또한 고 대장은 산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게 결코 아닙니다. 동상으로 인해 두 발을 잘라야한다는 선고를 받았을 때와 60m 아래로 추락해 허리가 부러진 순간, 동료들을 하늘로 보내고 혼자만 돌아왔을 때 쏟아졌던 비난을 털어놓을 때에는 산에 대한 두려움과 경외감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란 시가 있어요. 숲 속에 두 갈래의 길이 있었네.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했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네... 강의를 할 때 그런 말을 많이 해요. 수많은 갈림길에 맞닥뜨렸을 때 당신은 이곳으로 갈 지 저곳으로 갈 지 선택하지 못하고 고민만 하고 있지 말라고요. 그러나 선택한 것에 대한 후회는 결코 없을 것이라고 말이죠.”
시샤팡마 베이스캠프에서 히말라야의 파노라마와 호수를 내려다보며 ‘이 풍경을 볼 수 있는 사람이 정말 극소수일 텐데’라는 생각에 행복했다는 고(故) 고미영 대장. 이제 그의 모습은 볼 수 없지만 불가능에 맞서던 용기와 땀방울은 히말라야 설원 위에 영원히 빛날 것입니다. 덧붙여, 삶의 기로와 도전에 직면할 때마다 그를 떠올릴 이들이 남아있는 한, 산악인 고미영의 도전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기획'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유행어, 성대모사도 저작권 보호받을 수 있을까 (0) | 2010/01/05 |
|---|---|
| 故 고미영 대장 생전 인터뷰 육성 미공개분 (3) | 2009/07/21 |
| 안정적 공무원직 버리고 구름 위로 올라간 철녀 (55) | 2009/07/13 |
| 찬란한 유산의 가치를 드높이는 중년 3인방 (0) | 2009/06/04 |
| 서울 사는 김모씨 고사리 캐다가 표류한 사연 (0) | 2009/06/02 |
트랙백 보낼 주소 :: http://culture.interview365.com/trackback/233
-
여성 최초 히말라야 14좌 도전하는 산악인 고미영
from 어둠 속의 메모2009/07/13 13:06히말라야는 전세계 산악인들의 이상향이다. ‘세계의 지붕’이라는 별명답게 험준한 고봉(高峰)이 즐비한 까닭이다. 그곳은 동시에 노스탤지어다. 극한의 기후 속 죽음의 공포와 고독에 맞서야 했던 경험은, 등반대원들에게 평생 잊히지 않을 기억으로 남는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에베레스트(8,848m)를 포함, 히말라야산맥과 카라코람산맥에 걸친 8천미터 이상 고봉을 가리켜 ‘14좌’라 한다. 1986년 이탈리아의 라인홀트 매스너가 이 14좌 등반에 처음 성.. -
92미터 수중동굴 에서의 구사일생[Return from the deadly 92 meter Death Trap]
from Humanist2009/07/13 17:2892미터 수중동굴 에서의 구사일생 Return from the Deadly 92 meter Death Trap Journal and Photos by Joon H. Park Prologue: 금번 기사는 지난 단기 4334년(서기2001년) 11월 18일에 단군 박공이 한창 태국내의 수중 동굴 탐험을 진행할 무렵 즈음 뱅콕에서 약 850여 킬로미터 떨어진 태국 남부의 한 조그마한 촌 도시인 나콘 씨타마랏(Nakon Sitam.. -
고미영 산악인 KBS보도 꼭 이래야만 했는가?
from 빛으로 하는 페인팅2009/07/14 13:08낭가파르밧(해발8,126m) 몇일전 한국의 여성 산악인 고미영씨가 낭가파르밧(해발8,126m) 등정 후 실족하여 사고를 당했습니다. 현재 구조작업의 지연으로 생사조차도 알수 없는 상황이지요 저는 산을 좋아하는 산악인도 아니며 고미영씨와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것도 아닙니다. 우연히 TV에서 고미영씨가 히말라야 14좌 완등을 목표로 열심히 산을 오르고 있는것을 보았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는걸 알게 되었지요 그 후 항상 마음속으로 고미..
이올린에 북마크하기
이올린에 추천하기
